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아리엘 샤론 (문단 편집) === 총리 재직과 말년 === [youtube(AQCexMSnlMo)] [[2001년]] [[2월 6일]], [[이스라엘]]의 총리로 당선되었다. 당선 직후, [[PLO]]와의 평화협상을 재개하고 평화적인 분위기를 이끌어가는 듯 했지만 [[9.11 테러]] 직후 태도를 바꿔 [[테러와의 전쟁]]에 동참했다. 그러나 얼마 뒤엔 반평생을 몸담았던 리쿠드 당을 탈퇴, 온건 성향의 신당을 창당하는 등의 행보를 보였다. 왔다갔다하는 행보로 볼 수도 있지만, 꼭 이스라엘이 아니더라도 자국 내 분리주의 문제를 가진 국가들에선 테러와의 전쟁이 분리주의를 탄압하는 용도로 잘만 쓰였다. 러시아의 체첸, 중국의 위구르, 동남아시아 일부 국가들의 소수민족 반군 문제가 그렇다.[* 평소에는 미국이 인권 문제로 제동을 걸어서 함부로 때려잡지 못했지만, 마침 그 미국이 테러를 절대악으로 규정하니 극단화된 분리주의 운동을 때려잡을 명분을 얻는 것이다. 비슷한 예가 [[도널드 트럼프]] 집권 이후에도 있었고.] 다만 저런 나라들과는 달리, 이스라엘에게 팔레스타인은 더 이상 때려잡기 어려울 만큼 강대한 집단이 되어 버렸다 보니 강경책을 포기한 것이다. 사실 1990~2000년대 이후 이스라엘 정계가 무력 행사 같은 강경책은 최대한 자제하고 봉쇄나 간접적 제재로 일관하는 것도, 물론 인권의식 향상 같은 측면도 있겠지만 본질적으로는 더 이상 때려잡아서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명분 싸움에 들어간 것에 가깝다.[* 때려잡는 것이 최상의 선택지일 때 굳이 명분에 얽매여 유화책을 선택하지는 않지만, 더 이상 강경책의 수지타산이 맞지 않는다면 아무리 싸우느라 서로 간의 증오가 격해졌어도 감정보단 이성적으로 물러서기도 하는 것이 현대 이스라엘의 외교 전략이다. 반대로 말하면 이스라엘에게 탄압당하는 와중에도 스스로 그런 입지를 확보한 것이 팔레스타인의 외교적 성과인 셈이고.] [[2005년]] 평화협정에 일부 합의하면서 [[가자 지구]]에서 자국민 정착촌과 군 병력을 전부 철수시켰다. 아이러니하게도 덕분에 이후 [[가자 전쟁]] 당시 이스라엘군은 [[가자 지구]]를 마음놓고 폭격할 수 있게 되었다. --물론 그 이전에도 수틀리면 폭격했다.-- [[요르단강 서안지구]]에 장벽을 짓고 새로운 국경선에 대한, 구상을 세웠지만 [[2006년]] 1월 [[뇌졸중]]으로 쓰러지면서 실현되지 못했다. 총리로서는 같은 해, 4월 14일까지 재직하였으며 8년간의 투병 끝에 [[2014년]] [[1월 11일]] 86세로 사망하였다. 참고로 단 음식을 워낙 좋아하다보니[* 특히 도넛을 좋아하고 즐겨먹었다.] 말년에는 심각한 비만이라[* 실제로 청년 시절과 말년을 비교해보면 체형이 비교가 될정도로 비만이 심각했다. 다만 청년 시절의 사진을 보면 건장한 체격이며 잘생겼다.] 각종 성인병을 달고 살았다. 사망했을 때 많은 이스라엘인들이 애도하였다. 시신은 남부 네게브사막의 고향에서 먼저 세상을 떠난 그의 부인 릴리의 묘지 옆에 안장된다. 팔레스타인인들은 악마가 죽었다고 그의 죽음을 기뻐하고 환호하였다. 이슬람과 기독교인은 지옥에 갈 존재라고 대놓고 까는 말을 해서인지 [[팻 로버트슨]] 목사도 "지옥에 갈 건 바로 이 자"이라고 분노어리게 비난했으며 샤론 총리가 죽자 로버트슨은 "하느님의 심판으로 드디어 지옥에 간 샤론"이라고 기뻐하며 이스라엘에서 울컥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